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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kumari) 여신들이 매춘부가 되기까지]

by 외 계 인 2023.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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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리(kumari) 여신들이 매춘부가 되기까지]

 

힌두교의 여신을 섬기는 네팔의 여러 지역에서는 어린 여자아이를 선발해서 자신들이 믿는 여신들의 화신 즉, 현신 혹은 분신으로 삼아서 섬기는 문화가 있습니다.

 

이 여자아이들을 "쿠마리" 라고 합니다.

 

쿠마리가 탄생한 배경은 모두  네팔의 전설에 기반합니다.

 

지역마다 전설의 내용이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내용은 자신을 섬기는 자들에게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너희 앞에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된 문화인지는 불명확하지만 대략 14세기쯤부터 시작되어 여자이를 뽑아서 쿠마리로 삼았습니다.

 

이렇게 이미 환생한 쿠마리를 찾기위해 아이들을 선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쿠마리의 선별기준"

기본기준

아무나 뽑지않으며 기본적으로 혈통을 봅니다.

천한 자의 몸을 빌려 자신의 모습을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의 후예인 샤캬(shakya) 가문과 바즈라차리야(bajracharya) 가문의 아이들 중에서 선별합니다.

 

초경을 겪지 않은 3~6세 중에 세 단계에 걸쳐 선별합니다.

보통 4~5세 아이들이 선발됩니다.

 

첫 번째  선별 단계에서는 32가지의 기준에 의해서 뽑는데 이 기준은 대부분 외모입니다.

아름다운 몸매, 사자 같은 가슴, 송아지같은 속눈썹, 고운피부, 허벅지, 손 발 등 외부인들이 보기에는 그냥 예쁜아이를 뽑는듯 보이게 됩니다. 사자같은 가슴이 무슨 가슴인지 모르겠지만 그렇습니다.

 

그리고 32두 가지 기준 중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몸에 흉터가 없어야 함입니다.

 

쿠마리는 절대로 피를 흘려서는 안 되는 철칙이 있기에 그래서 흉터가 있는 아이는 제외됩니다.

 

두 번째 선별 단계에서는 바로 전대 쿠마리가 쓰던 장신구를 알아보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장신구를 펼쳐놓은 후 쿠마리가 사용하던 장신구를 고르라고 하여 선택하는지 여부입니다.

여신의 환생이라면 장신구를 알아볼 것이라 생각해서입니다.

 

세 번째선별 단계에서는 여신의 용기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심하게 훼손된 짐승의 사체와 혼자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여기서 울거나 공포감을 느끼면 탈락입니다.

 

이렇게 세 단계를 거쳐 총 11명의 쿠마리 선별하게 됩니다.

 

이중에 카트만두 에 있는 쿠마리 사원으로 보내지는 아이를 로열 쿠마리(royal kumari)이고 나머지 각 지역으로 보내는 아이들을 로컬 쿠마리(local kumari)라고 합니다.

 

이렇게 최종 쿠마리 선별 후 본격적으로 쿠마리 활동의 시작입니다.

 

쿠마리의 활동이라 하면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그냥 여신으로서 위엄을 유지하며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여신상으로 보게 됩니다.

 

사람들은 음식과 장신구 등을 바치게 됩니다.

여신을 섬기듯이 말이죠.

 

 쿠마리는 운동을 해도 안되고 자신의 발로 걸어 다녀도 안됩니다.

이동시 어른들에 안기거나 가마로 이동합니다.

 

일을 해서도 안되고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대부분의 일과입니다.

쿠마리의 유일한 일이라면 사람들에게 티카를 붙여 주는 것입니다.

 

티카는 종교적 의미를 가진 부적으로 쌀과 붉은 염료를 섞어서 이마에 점을 찍는 일입니다.

간혹 이 과정에 쿠마리가 감정표현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의 예언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합니다.

 

기본적으로 쿠마리는 감정표현을 하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으나 그 이전에 어린아이이기에 한 번씩 드러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특이하게 예언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쿠마리는 예전에는 학교에 가지도 못하고 교육도 못 받았다 합니다.

친구도 없고 다른 누군가와 불필요한 대화가 불가합니다.

 

이렇게 여신으로 살아가다 초경과 함께 쿠마리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쿠마리는 피를 흘리면 안 되기게 초경의 피와 함께 그 자리가 박탈당하게 됩니다.

 

여신의 몸에서 피가 나옴과 동시에  불길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이후 여신은 인간의 몸에서 떠난다고 믿는 것입니다.

 

지금 까지 쿠마리 중 단 한 명만이 30대까지 쿠마리의 자리를 유지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나 쿠마리 바즈라차리야(DHana kumari bajracharya)입니다.

 

이 쿠마리는 월경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어떤 이유에서인지 여신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내려온 이후에도 스스로 쿠마리의 생활을 자처했고 사람들을 그를 진짜 쿠마리로 인정하며 받들었습니다.

 

이런 쿠마리 여신들이 국제적으로 안 좋은 여론이 생성된되에는 은퇴한 쿠마리들의 삶 때문입니다.

 

 

 

 

"은퇴 후 쿠마리 여신들의 삶"

쿠마리는 예전에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은퇴 후 사회적응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았고 피를 흘려 쿠마리의 자리에서 내려온 그런 딸과는 미신적으로 불행이 찾아온다는 믿음에서 가족들과도 멀어지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쿠마리의 여성을 천대하고 차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쿠마리 출신의 많은 여성들이 결국 먹고살기 위해 매춘일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점을 보면 국제적으로 아동학대로 볼 수 있었기에 지적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전통문화라는 이름하에 바뀌지 않았으나 이후에도 국제적 여론이 거세지자 네팔 정부는 결국 조정을 하게 되는데 로열 쿠마리는 과외교사를 교용 해서 개인교습을 받도록 하며 각 지역의 로컬 쿠마리드를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바꾸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 쿠마리에 대한 인식 개선을 주도하여 이제는 은퇴한 쿠마리들도 가족의 품 안으로 돌아가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쿠마리의 삶에서 내려와 평범한 삶을 사는 쿠마리들의 인터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차니라 바즈라차리야(chanira bajracharya)라는 쿠마리 출신의 여성은 언론인터뷰에 "쿠마리의 삶은 행복했고 만족스러웠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자신의 SNS에 쿠마리시절의 사진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네팔 최고의 명문대학인 카트만두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까지 취득했습니다.

 

 

 

"현대 오늘날의 쿠마리"

쿠마리의 문화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네팔 사람들도 이제는 진짜 여신으로 섬기기보다는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의 잔상 정도록 여겨지고 있습니다.

 

또한 인권침해 비판 이후 이제는 개인학습지도와 숙소에서 자전거 타기도 하고 TV도 시청을 하게 됩니다.

 

 

 

유튜브 "적응하기 힘든 쿠마리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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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옷.. 코크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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